아이돌 앨범 과소비 (팬사인회, 초동, 환경문제)
아이돌 팬이라면 앨범을 많이 살수록 진짜 팬이라는 공식이 정말 맞는 걸까요? 저도 한때 HOT 팬으로서 앨범을 여러 장 사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돌 앨범 판매 문화를 보면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수백 장씩 앨범을 구매하고, 포토카드만 빼낸 뒤 나머지는 버리는 모습이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과거와 현재, 앨범 구매 방식의 차이
제가 HOT 팬이었을 때는 학생 신분이라 돈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 앨범이 나오면 소장용 카세트테이프 하나, 그리고 실제로 듣는 CD 하나만 샀습니다.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CD를 10장 정도는 사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소유욕 때문이 아니라 HOT의 앨범 판매량을 늘려서 기록을 세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세대 아이돌이었던 HOT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저는 팬으로서 그 기록이 깨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두 가지 형태를 산 이유도 앨범 구성은 같았지만 형태가 달라서 둘 다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굿즈 수집 욕구'였던 셈이죠.
하지만 최근 아이돌 팬들의 앨범 구매 패턴은 제 경험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 완전히 다릅니다. 한 팬은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160만 원어치, 약 100장 이상의 앨범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응원을 넘어 일종의 '입장권 구매'에 가까운 형태로 변질됐습니다.
팬사인회와 초동 판매량의 함정
일반적으로 '초동 판매량'이 높으면 그 아이돌이 인기 있다는 증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초동 판매량이란 앨범 발매 후 첫 주 동안의 판매량을 뜻하는데, 이 기간에 기획사들은 각종 럭키드로우(Lucky Draw) 행사나 팬사인회 응모 이벤트를 집중적으로 진행합니다. 팬들은 "우리 애들 기 살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앨범을 대량 구매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초동 수치를 끌어올립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앨범의 본래 의미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앨범이 음악을 담은 매체이자 소장 가치가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팬사인회 응모권에 앨범이 덤으로 따라오는 구조가 됐습니다. 실제로 한 팬은 "팬사인회 응모 티켓을 샀는데 앨범을 주는 기억이 됐다"고 표현했습니다.
팬사인회 컷(당첨 기준 구매량)도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 장의 기적'이라며 한두 장만 사도 당첨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최소 50장 이상은 사야 당첨 가능성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앨범 판매량이 아무리 높아도 그게 진짜 인기의 척도인지 의문이 듭니다.
여러 버전 앨범과 랜덤 포토카드 전략
기획사들은 팬들의 구매를 부추기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멀티 버전(Multi-version)' 앨범입니다. 같은 곡이 담긴 앨범을 여러 디자인으로 나눠서 발매하는 방식인데, 팬들은 모든 버전을 구매하고 싶어합니다. 최근에는 한 앨범이 다섯 가지 버전으로 나오는 경우도 흔합니다.
여기에 랜덤 포토카드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포토카드란 앨범 안에 무작위로 들어가는 멤버 사진 카드를 말하는데,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을 계속 구매하게 됩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확률성 이벤트 방식은 하이브(HYBE)가 먼저 시작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기한 게 앨범 구조에 대한 수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버전을 만나보고 싶은 팬들의 수는 딱히 없는데, 공급을 주면 무조건 다 팔리는 거죠." 이는 기획사가 팬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공방(공개 방송) 참여나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서는 특정 버전의 앨범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멀티 버전 앨범: 같은 음악, 다른 디자인으로 5~7개 버전 발매
- 랜덤 포토카드: 앨범마다 다른 멤버 카드가 무작위로 들어감
- 한정판 굿즈: 아티스트 메이드 상품에 특별 포토카드 포함
- 응모권 분리: 팬사인회용 앨범과 일반 앨범이 따로 존재
환경 문제와 앨범의 의미 퇴색
대량 구매된 앨범은 어떻게 될까요? 많은 팬들이 포토카드만 빼내고 CD와 포장지는 버립니다. 실제로 무더기로 버려진 아이돌 앨범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한 팬은 "앨범을 버리는 걸 보니까 현타가 왔다. 나는 정말로 좋아해서 샀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하는 초동 기록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앨범 포장재는 대부분 코팅된 종이로 돼 있어 재활용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 얼굴이 인쇄돼 있어서 함부로 버리기도 꺼려진다고 합니다. 일부 기획사는 물에 녹는 포토카드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필름과 종이가 분리되면서 오히려 쓰레기가 더 늘어난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한 시도였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게 확인되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결국 앨범을 너무 많이 찍어내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현재의 아이돌 앨범 판매 시스템은 팬들의 순수한 응원 마음을 이용해 과소비를 부추기는 구조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 제가 좋아하던 그룹을 응원하기 위해 앨범을 여러 장 사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백 장씩 사야만 팬사인회에 갈 수 있고, 버전마다 다른 포토카드가 들어있어서 다 모으려면 끝없이 구매해야 하는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판매량만 올린다면 K-pop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없습니다. 팬들도 결국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덕질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팬들이 돈을 쓸 때 아까워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했던 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팬들의 마음을 존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