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플랫폼의 양면 (위버스, 팬카페, 소통)

팬클럽 활동을 한다는 게 이렇게까지 편해질 줄 알았을까요? 제가 HOT 팬이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앨범 하나 사려면 직접 오프라인 매장을 뛰어다녔고, 멤버들 소식은 각종 팬카페를 일일이 순회하며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친구 아이돌 팬 생활을 옆에서 보니, 위버스 하나로 공연 티켓 응모부터 실시간 소통까지 다 해결되더군요. 이게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버스, 모든 걸 한곳에 모은 플랫폼

팬덤 플랫폼의 양면

위버스(Weverse)란 하이브의 자회사이자 네이버 관계사인 위버스 컴퍼니가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아티스트와 팬이 직접 소통하고, 공연 티켓을 사고, MD 상품을 구매하고, 유료 콘텐츠까지 감상할 수 있는 종합 팬덤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위버스는 전 세계 245개국에서 약 6,500만 명의 커뮤니티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출처: 위버스샵).

저도 한번 궁금해서 친구 계정으로 들어가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티스트가 직접 올린 포스트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팬들이 댓글을 달면 멤버가 직접 답글을 달아주기도 하더군요. 위버스 라이브 기능을 통해 실시간 방송도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고, 나중에 다시 보기나 자막까지 지원됩니다. 세븐틴 같은 경우 '고잉 세븐틴' 같은 자체 제작 콘텐츠가 유튜브와 위버스에 동시에 올라오는데, 유료 콘텐츠는 위버스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멤버십 가입자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집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멤버십 전용 라이브 방송 및 콘텐츠 시청 가능
  2. 생일 축하 메시지, 포토 세레모니 같은 개인 맞춤형 이벤트 참여
  3. 온라인 콘서트 HD 멀티뷰 옵션과 디지털 포토 세트 제공
  4. 티켓 추첨제를 통한 공연 및 팬미팅 우선 응모 기회

위버스샵에서는 앨범, MD 상품, 공연 티켓, 음원까지 한 번에 구매할 수 있고, 번역 기능도 15개 언어를 지원해서 해외 팬들과도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 기능을 한 앱에 다 때려 넣은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팬카페 시절, 우리끼리의 끈끈함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플랫폼을 보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제가 HOT 팬이었을 때는 Club HOT에 가입은 되어 있었지만, 공식 온라인 공간 같은 건 없었거든요. 대신 여러 개의 팬카페가 있었고, 그곳에서 저희는 팬들끼리 진짜 소통을 했습니다.

게시글을 올리면서 HOT 얘기를 나누고, 직접 쓴 팬픽을 공유하고, 콘서트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면 다들 댓글로 난리가 났죠. 심지어 팬카페 자체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거나, 멤버 생일 때 전광판 광고를 함께 내기도 했습니다. 기부나 봉사 활동도 팬카페 이름으로 진행했고요. 그만큼 저희는 유대감과 사명감으로 끈끈하게 뭉쳐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한터글로벌 콘서트에 갔을 때 일입니다. HOT가 해체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 팬카페 회원들이 다 같은 슬로건을 들고 콘서트장에서 모여 응원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순간 정말 뭉클했습니다. 팬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서, 저희에게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준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랫폼 시대, 소비는 쉬워졌지만

요즘은 기획사 주도로 팬카페 대신 팬덤 플랫폼이 팬덤 활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플랫폼(Platform)이란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상호작용하는 디지털 공간을 의미하는데, 위버스 같은 팬덤 플랫폼은 아티스트(생산자)와 팬(소비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보니 이건 좀 다릅니다. 굿즈 구매, 이벤트 참여, 멤버와 팬들의 1:다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지, 팬들끼리의 소통은 생각보다 얕은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팬들끼리의 깊은 소통은 X(구 트위터) 같은 SNS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물론 멤버가 직접 팬카페에 글을 써주고 소통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저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멤버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지만, 예전처럼 팬들끼리 '우리'라는 생각보다는 플랫폼 안에서 '소비한다'는 느낌이 더 크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K-pop 팬덤의 저력도 많이 나오지만, 트로트 팬덤의 어마무시한 파워도 자주 등장합니다. 나이를 무시하고 최애 트로트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팬들끼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 색깔을 맞추고, 대규모 플래시몹을 하고, 최애 이름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면서 단단하게 뭉쳐 있는 모습 말이죠. 임영웅 같은 경우는 그 규모가 어느 K-pop 아이돌 못지않게 크다고 합니다(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그들은 팬카페를 통해서 예전 1세대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더 똘똘 뭉치기 때문에 나온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더 많이 교류하고,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팬들과도 소통한다는 점에서 플랫폼의 장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팬들끼리 으샤으샤 하면서 하나가 되어 최애를 응원하던 그 모습이, 솔직히 조금은 그립기도 합니다.

결국 위버스 같은 팬덤 플랫폼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극대화했지만, 팬덤의 본질인 '함께하는 즐거움'은 오히려 희석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고, 글로벌 팬덤 시대에는 이런 플랫폼이 필수적이라는 것도 압니다. 다만 앞으로는 플랫폼 안에서도 팬들끼리 진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더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팬덤이 단순한 소비 집단이 아니라, 다시 한번 '우리'로 뭉칠 수 있을 테니까요.

--- 참고: Youtube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팬덤 문화의 진화 (오디션 참여, 기획 개입, 윤리 요구)

K-POP 해외팬덤 (과거와 현재, 활동 차이, 문화 영향)

아이돌 앨범 과소비 (팬사인회, 초동, 환경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