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용어의 변화 (본진, 멀티팬, 1세대 팬덤)

예전에 HOT를 좋아할 때만 해도 덕질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았습니다. 저희 세대는 그냥 팬이었고,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빠순이, 빠돌이라고 낮춰 부르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본진, 부본진, 입덕, 스밍 같은 용어들이 쏟아집니다. 저도 아이돌 팬 경력이 꽤 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이런 용어들을 처음 들었을 땐 당황스러웠습니다. 세대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싶었죠.

아이돌 덕질 용어

1세대 팬덤에는 덕질 용어가 없었다

1990년대 후반, 저희가 HOT를 좋아할 때는 지금처럼 덕질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덕후라는 단어 자체가 제게는 그리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았거든요. 당시에는 팬덤 문화를 낮춰 부르는 빠순이, 빠돌이라는 말이 훨씬 흔했습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팬들끼리 정보를 나누는 것도 한정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줄임말이나 은어가 발달할 여지도 적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아이돌 팬들 스스로가 '덕후'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덕질이라는 표현이 팬 활동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처럼 자리 잡았고, 관련 용어들도 우후죽순 생겨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변화는 팬덤 문화가 단순히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적극적인 참여 문화로 진화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아이돌 팬 경력이 있으니 웬만한 용어는 들으면 감이 왔습니다. 입덕(입문+덕후)이나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멤버) 정도는 맥락상 쉽게 이해할 수 있었죠. 하지만 본진, 부본진처럼 요즘 세대가 당연하게 쓰는 용어들은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낯설었습니다. 우리 때는 한 그룹만 좋아하는 게 당연했거든요. 다른 그룹을 좋아한다는 건 일종의 배신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본진과 부본진, 멀티팬 문화의 등장

본진이란 팬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뜻하고, 부본진은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그룹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요즘은 한 그룹만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H.O.T와 젝스키스, 혹은 god와 신화처럼 그룹 간 경쟁 구도가 뚜렷했기 때문에 팬들도 자기 그룹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여러 그룹을 동시에 좋아하는 멀티팬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돌 그룹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한 해에 데뷔하는 그룹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대형 기획사부터 중소 기획사까지 수십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합니다. 둘째, SNS와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팬들이 여러 그룹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해외 팬덤이 크게 확장되면서 K-pop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특정 그룹을 좋아한다기보다 K-pop이라는 장르를 즐기는 팬들도 많아진 거죠.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멀티팬 문화는 예전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건강한 면이 있습니다. 과거처럼 그룹 간 팬덤이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고, 각자의 아티스트를 응원하면서도 다른 그룹의 성과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거죠. 물론 일부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경쟁 의식이 남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팬덤 문화가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K-pop 팬덤 조사 자료 참고).

팬덤 용어로 본 문화의 진화

덕질 용어의 변화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팬덤 문화 자체의 진화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스밍(스트리밍)이라는 용어는 음원 차트 시스템이 디지털화되면서 생긴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음반 판매량이나 방송 출연 횟수가 인기의 척도였다면, 이제는 멜론, 지니뮤직 같은 음원 플랫폼에서의 스트리밍 횟수가 핵심 지표가 되었죠. 팬들은 아티스트의 차트 순위를 올리기 위해 24시간 내내 음원을 재생하는 이른바 '스밍 총공'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활동을 두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음악 소비가 진정성을 잃고 단순히 숫자 올리기로 전락했다는 의견이죠. 저 역시 처음에는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스밍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지지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음반을 사고 팬클럽에 가입하며 콘서트 티켓을 구했던 것처럼, 지금 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덕질을 하는 거죠.

또 다른 흥미로운 용어로는 포카(포토카드), 홈마(홈페이지 마스터), 덕통사고(덕후+교통사고) 등이 있습니다. 포카는 음반에 동봉된 멤버 사진 카드를 뜻하는데, 요즘은 이게 하나의 수집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희귀 포카는 수십만 원에 거래되기도 하죠. 홈마는 아이돌의 고화질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공유하는 팬을 말하는데, 사실상 프로 사진작가 수준의 장비와 실력을 갖춘 분들도 많습니다. 덕통사고는 우연한 계기로 특정 아이돌의 팬이 되는 순간을 뜻하는 용어로, SNS에서 영상 하나를 보다가 순식간에 입덕하는 경험을 재치 있게 표현한 말입니다.

이런 용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진/부본진: 가장 좋아하는 그룹과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그룹. 멀티팬 문화를 반영한 용어.
  2. 스밍: 음원 스트리밍을 통해 차트 순위를 올리는 팬 활동. 디지털 음원 시대의 핵심 응원 방식.
  3. 포카: 음반에 동봉된 포토카드. 수집 문화의 중심 아이템.
  4. 홈마: 고화질 아이돌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팬. 팬 생산 콘텐츠(UGC)의 대표 사례.
  5. 덕통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팬이 되는 경험. SNS 확산과 맞물린 현상.

제가 직접 살펴본 바로는, 이런 용어들이 팬덤 내부에서만 쓰이는 은어가 아니라 이제는 대중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방송이나 기사에서도 덕질, 입덕, 최애 같은 표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런 용어들이 일반 대중, 즉 머글(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취미 분야든 그 안에서 통용되는 전문 용어가 있기 마련입니다. 게임 커뮤니티에 게임 용어가 있고,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 주식 용어가 있듯이, 아이돌 팬덤에도 고유한 언어 체계가 있는 거죠. 중요한 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팬들은 성숙한 문화 의식을 가지고 과거의 극성팬 이미지를 벗어나야 하고, 일반 대중은 팬덤 문화를 단순히 폄하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요즘 덕질 용어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이게 단순히 언어의 변화를 넘어 팬덤 문화 전반의 진화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전의 빠순이, 빠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덕후라는 정체성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지금의 팬덤 문화는, K-pop이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팬덤 문화가 더욱 건강하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라며, 우리 모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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